8월의 폭염이 맹렬하다. 베란다의 식물을 정리하다가 잎 끝이 마르고 영양상태도 불량한 난 한 점을 버리려고 집어 들려는데 역시 화분의 한쪽이 깨져있다.
오래 전부터 치우려고 했지만 멀쩡한 쪽으로 돌려놓고 물주는 것도 거의 잊어버리곤 했는데
아뿔사! 난 꽃이 활짝 피어있다. 베란다의 뜨거운 열기를 묵묵히 받아내며 힘껏 울음 꽃을 피워낸 것이다.
나리꽃처럼 주근깨 같은 점이 간간이 박힌 모양이며 엄지와 중지 손가락을 맞댄 것처럼 자유분방하게 펼친 꽃잎이 화사한 색깔은 아니지만 수수하고 소박한 맛이 정겹게 느껴진다.
화분에 물을 흠뻑 주고 난초 잎을 하나씩 닦아낸다. 작은 점 같은 구멍이 군데군데 뚫려있고 갈변현상이 보인다. 잎은 생기를 잃어 부서질 듯하다. 그저 뼈만 남은 사람처럼 애처롭다.
흡사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과 닮았다. 물을 찾아 뿌리를 길고 튼실하게 내렸을 것이다.
뿌리 끝에 닿는 것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흙이 아니고 스티로폼 조각이었으리라. 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은 결국 꽃을 피워낸 것이다.
꽃이 피는 시기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는 이른 봄에 피고 어떤 이는 여름에 피고 또 다른 이는 늦가을 찬 서리 맞으며 눈에 띠지 않는 오솔길이나 비탈길에 구절초로 피어난다. 또한 혹독한 겨울 눈 속에서 피는 설중매 같은 꽃도 있다.
시간이나 환경을 탓 할 일이 아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시기와 질투 속에서도 메마름과 결핍 속에서도 강물과 언덕사이에서도 감추고 싶은 깨진 화분 속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