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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회화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등장할 때 까지는
거의 운동표현을 한 그림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 당시는 신 중심의 사회이다 보니 <제단화>가 그림의 대부분 이었다.
제단화는 3단 접이식 형태를 갖춘 것으로 글을 모르는
시민들에게 성경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그 때문에 그림에 주관적 표현이라는
개념이 전무했다. 추상이 나올 환경이 아니었다.
기차의 발명으로 회화는 일대 변혁을 시작한다.
바로 추상의 탄생이다.
19세기 중반 철도의 발명으로 인하여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는데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그 모습을 “밭 언저리에 핀 꽃은 이미 꽃이 아니라
색채의 반점, 아니 오히려 빨갛고 하얀 띠 일뿐입니다.
곡물 밭은 엄청나게 긴 노란 띠의 행렬, 클로버 밭은
길게 땋아 늘어뜨린 초록의 머리로 보입니다.
마을도 교회의 탑도 나무들도 춤을 추면서 미친 듯이
곧장 지평선으로 녹아듭니다“ 라고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속도에 의해 차창 밖의 풍경이 곱게 섞이고 하나의 색으로
수렴 되어 가는 과정, 디테일은 상실하고 흐릿한 경계를
표현한 것이 추상화의 시작이다.
미술은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캔버스에
점, 선, 면, 색채와 같은 도상언어로 표현하고
관람자에게 말을 거는 소통의 방법 중에 하나인데
추상화는 객관화하기가 어려운 장르이다 보니
폄하되거나 과대포장 되기 쉬운 그림이다.
그러나 추상은 대상의 핵심을 뽑아낸 결과물임을
알아차린다면 압축되고 정제된 몇 줄 만으로도
빛나는 시처럼 우리의 가슴에 파고 들 수 것이다.
칸딘스키나 파울 클레 같은 이들이 개발한 이론이나
기법은 오늘날 디자인 분야에서 큰 힘을 발휘 하고 있다.
문자추상이 서각 작가들에게 영감이 되고 타이포그래피가
현대 디자인의 중심에 서고 있다.
21세기는 이미지를 읽지 못하면 문맹인 시대다.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미술은 생각보다
가깝고 깊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