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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는 예전부터 대작이니 위작이니 도난사건 등이 있어 왔다.
이번 대작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대략 두 가지 시선으로 나뉜다.
무작정 덮어놓고 비난하는 부류와 현대미술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하는 부류다.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보자.
근대미술(19세기 후반-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 전후의 미술)은 르네상스 이래 지켜져 온 전통미술을 거부하였다.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예술운동을 다다이즘이라 하는데 다다라는 것이 어린아이의 장난감이라는 것이다.
예술이 엄숙할 필요도 거룩할 필요도 어려울 필요도 없게 하자는 것이다.
재미있고 키치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도 예술이라 부르자는 것이다.
물론 어떤 시기에라도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조와 혁명이 있었지만 이 시기에 미술이나 예술을 대하는 태도나 관점은 핵폭탄급으로 달라진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이야기는 얘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이미 만들어진 어린이 변기통이 예술이 되고 죽은 상어가 포르말린용액이 든 저수조에 진열되고(물론 팔렸다), 심지어 자신의 피를 4.5L나 뽑아 본인의 얼굴을 부조로 떠서 혈액을 담아 전기 냉장장치를 한 작품이 나올 정도다.
물론 이 작품도 팔렸다.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이유다.
현대미술의 작동원리를 이해한다면 이번 일은 해프닝에 불과할지 모른다.
캔버스에 정직하게 실제묘사를 하는 작품 활동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현대미술은 캔버스에 전혀 새로운 방식의 작업을 권한다. 물감을 뿌리든 칼로 찢든지 자유다.
단지 거기에 실험을 권면한다.
이전의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은 예술 말고도 삶의 현장에서 더 잘 발견된다.
팝아트 이후 작가는 콘셉트만 제공하고 물리적 실행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화된 관행이다.
계획된 확고한 의도 속에서 작업과정을 통제하였다면 자신이 전혀 손대지 않았더라도 본인의 작품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엔디워홀은 자신이 팩토리라고 부르는 공장에서 실크인쇄 기법으로 마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 등을 연속 인쇄한 그림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물론 다 조수가 말이다.
필자가 아는 화가분도 형편이 좀 나아지면 조수를 고용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청록색 마릴린이 인쇄된 그림은 무려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900억에 팔렸다.
이 작품은 샤론안경에도 걸려 있다. 당연히 인쇄된 것이다.
가격은 고작 삼만원 정도이다.
남의 철학이나 컨셉을 그대로 베껴서 팔면 시쳇말로 돈이 안 된다.
잭슨폴록은 아예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놓고 물감 통을 들고 뿌려서 완성했다.
그의 별명은 드리퍼다. 뿌리고 흘리는 사람이다.
그런 건 나도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너는 안했지!
콜롬부스의 달걀세우기와 같은 것이다.
당신의 독창적인 것을 개발하라.
최초가 되고 최고가 된다면 당신은 교주가 될 것이다.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나와 세계를 열광시켰다.
그는 테크니시안도 아니고 엔지니어도 아니며 인문학자도 아니다.
잡스는 여러 가지의 학문을 섞고 융합해서 전혀 다른 것을 개발했다.
이어령이나 김정운교수가 말하는 편집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잡스 가장 존경한 사람은 러시아 출신의 미국화가 마크 로스코이다.
교주로 삼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정작 마크 로스코 본인은 자신을 화가라기보다 철학자에 가깝다고 말했다.
개념미술은 과거의 예술 관념을 무시하고 완성된 작품자체보다 과정이나 컨셉 혹은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 생각하는 새로운 미술적 제작태도를 의미한다.
사실 영향력 있는 위대한 화가들이 왜 자신을 철학자로 생각하고 그렇게 불리워지기를 원했는가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팝아트는 반 예술정신을 미학으로 끌어 들였다.
지난백년 동안 미술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안다면 조영남 대작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은 달라 질 것이다.
오늘도 캔버스 앞에서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뿔날만한 사건이다.
유시민의 말을 들어보자.
창작활동은 고상하기만 한 것 이아니라 노동을 내포하는 것이며 예술분야 역시 지난한 노동의 과정을 요구한다.
조영남 그림은 팝아트적 요소가 강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작업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했어야 했다.
역시 정직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