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중순, 신규발령으로 행정복지센터에 근무하게 되어 어느덧 정신없는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문화누리카드를 업무로 만난 지도 두어 달 지났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간 많은 분들이 문화누리카드를 통해 문화경험을 누리고 즐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담당자로서 참 행복했다.
10월 언젠가는 한 민원인 분께서 오셔서 문화누리카드를 재발급 받으시고는 감사의 말을 전해주셨다. “우리 아이가 음악 전공 지망생이었는데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시켰어요. 그냥 대학 가기도 힘든데 음악이 웬 말이냐며 설득했는데 단념한 이후로도 미련이 남는지 예술의 전당을 자주 기웃거리더라고요. 처음엔 그런 모습이 마음이 아파 괜히 모르는 척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문화누리카드로 1년에 한두 번이라도 공연을 볼 수 있으니 참 다행이라 생각 들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짧지만 악기 연주를 얼마간 했었던 나는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아파 무슨 말을 붙여볼까 곰곰이 생각했지만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임용 후 여태 민원인이 오시는 것에 대해서, 그저 문의가 적었으면 하고 바라며 불안해하기만 하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무슨 말씀을 드릴까 고민하던 나에게 어머님께서 말을 이어 나가셨다. “예술 전공하는 거, 처음에는 부정적으로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나마 지원 받아 1년에 공연 몇 번이라도 보면서 행복해하는 딸아이를 보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형편이 안 좋다고 꿈까지 못 가질 이유가 있나 싶어서요. 딸아이도 나이를 먹을테고, 그때도 스스로 음악이 정말 하고 싶다고 느낀다면 형편에 따라 거창하지 않더라도 뭐라도 조금씩 해볼 수도 있을테니까….”
울컥하시는 마음에 말을 잇지 못하시는 어머님을 보며 그렇죠, 아니에요, 나중에라도 좋은 기회가 있을 거예요 등 여러 말을 번갈아 대답해드렸다. 어머님은 괜히 기분 좋게 와서 청승을 떨었다며 미안해하시며 돌아가셨는데, 그날 퇴근 후에는 좀처럼 쉬이 잠들지 못했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문화누리카드라는 사업의 의미를 아로새기면서 또한 보편적 복지의 전달자로서 내 위치가 어떤 위치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임용 후 모든 것들이 새로워 모르는 사업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면 겁부터 내고 허겁지겁 일처리 하기에만 급급했던 나.
사업담당자로서 문화누리카드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혜택을 받는 민원인의 태도가 너무나도 상이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어머님을 통해 그간 그저 초조함, 무심함으로 문화누리카드를 안내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보면서 누군가는 이 카드를 통해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도, 꿈을 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머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사업에 대한 단순 안내 및 신청을 돕는 담당자가 아니라 문화소외계층에 속하는 민원인분들에게 큰 힘이 되는 사업담당자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좀 더 적극적이려 노력하는 마음가짐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일이 더욱 보람차고 즐거워졌다. 많은 분들에게 새로운 문화 경험을 베푸는 업무이지만 오히려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내 마음이 풍성해지고 있음을 스스로가 느끼고 있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도 많은 문화소외계층의 분들이 문화누리카드를 통해 새로운 문화경험을 할 수 있으시길, 더욱 풍성한 삶을, 꿈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매일 출근길을 나서고 있다.
<수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18년도 통합문화이용권 문화누리카드 지자체 담당자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글입니다.>